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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재테크

미국 남북 전쟁 원인과 유럽 금융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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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1> 중

미국 성장 과정에서 국제 세력 개입은 대다수 있었는데,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전쟁 중 가장 큰 규모는 남북전쟁이었다. 4년에 걸친 전쟁은 남북 양측의 참전자 수가 300만 명에 달할 만큼 큰 규모였다. 당시 총 인구의 10%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남북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14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남북전쟁 원인은 노예 제도 폐지에 관한 내용이다. "노예 제도가 없었다면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노예 제도의 도덕적 붕괴가 없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드니 알스트롬의 말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노예 제도는 경제적 이익이 최우선이었고, 도덕성은 차후 문제였다. 당시 남부 경제를 떠받치는 두 기둥은 목화산업과 노예 제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 제도를 폐지할 경우, 농장주는 백인과 똑같이 높은 임금을 노예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산업 전체가 적자를 면치 못할 테고, 사회 경제 구조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국제 금융재벌은 미국 내전을 촉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용의주도한 전략을 세웠다.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후 영국의 방직산업과 미국 남부의 지주 계급은 점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유럽의 금융재벌은 이들 세력을 이용해 남북 충돌을 일으키기 위한 인맥을 은밀히 형성했다. 당시 남부 곳곳에는 영국 금융가의 대리인들로 넘쳤다. 이들은 현지의 정치 세력과 손잡고 연방에서 이탈할 계략을 짜고, 각종 뉴스를 뿌리는 등 언론 플레이에 고심했다.

 

이들은 노예 제도와 관련된 남북 양측의 경제적 이익을 교모하게 이용해 당시 별 관심을 끌지 못하던 노예 제도를 화제의 쟁점으로 부각시켜 결국 남북의 첨예한 갈등으로 비화하는 도화선이 되도록 했다.

 

미국 남북전쟁은 본질적으로 국제 금융 세력이 미국 정부와 미국 국가화폐 발행권 및 화폐 정책의 이익을 놓고 벌인 치열한 싸움이었다. 남북전쟁을 전후한 100년 동안 쌍방은 민영 중앙은행 시스템이라는 금융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투쟁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7명의 미국 대통령이 피살되었으며, 다수의 의원이 사망했다. 1913년 설립된 미국 연방저축은행은 이 투쟁이 결국 국제은행의 결정적 승리로 끝났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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