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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링컨 대통령의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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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o.wikipedia.org/

 

화폐전쟁 1 달러의 종말 중

 

링컨 대통령의 암살은 현재까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내용이다.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밤, 갖은 어려움과 위기를 딛고 4년 동안 잔혹한 내전을 견디던 링컨 대통령은 닷새 전 남부의 로버트 에드워드 리 장군이 마침내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투항했다는 승리 소식을 접했다. 링컨은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10시 15분, 암살범이 경호원이 없는 대통령 전용석에 잠입했다. 그는 링컨과 6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뒤쪽에서 대구경 권총으로 대통령의 뒷머리를 쏘았다. 후두가 관통당한 링컨은 이튿날 새벽 사망했다.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에 큰 음모가 개입되었다고 여겼다. 그 음모에 가담한 인물로는 링컨의 내각 요원,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은행가, 남부의 고위 관리, 뉴욕의 신문 출판기업 등 거론된다.

 

역사학자 오토 아이젠쉬믈의 저서 <링컨은 왜 암살당했을까?>는 이렇게 주장했다.

 

19세기 링컨 사건과 관련한 대규모의 역사 연구는 대부분 포드 극장의 비극에 대한 묘사에 치우치며 마치 대형 오페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사건을 암살 사건으로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링컨은 무모한 범죄자의 손에 희생되었다. 그 범죄는 법적 처벌을 받았으며, 음모론은 사라졌다. 미덕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했으며, 링컨은 이제 과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암살 사건의 의문이 풀렸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링컨 암살에 관련된 범인들은 아직도 법망에서 벗어난 상태다.

 

링컨의 암살은 100년 후에 일어난 케네디 암살과 비슷한 점이 많다. 케네디 암살 역시 대규모의 조직적 협력, 완벽한 증거 인멸, 체계적인 조사 방해 등으로 사건의 진상이 짙은 베일에 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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