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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85 -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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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평점 9 / 10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 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듬은 강원국 작가님의 책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연설 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연설 비서관으로 지냈다.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말에는 자신의 뜻이 있다. 그 말에는 글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두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쉬운 말로, 가장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직접 배웠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구 하나하나를 직접 다듬어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러 앉혀놓고, 토론하듯 가르쳤다. 연설문을 쓰는 일은 단지 글만 쓰는 일이 아니었다. 연설하는 사람의 생각과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였다. 저자는 "두 대통령과 함께해서 행복한 8년이었다."고 회고한다. 이 책은 그들로부터 배움의 결과물이다.

 

강원국 작가의 유년시절을 살펴보면 사실 글쓰기와 밀접한 인연은 없어보인다. 그는 원래 글쓰기의 젬병이었다고 할 만큼, 글 쓰는 게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초, 중, 고는 물론이고, 대학 때는 시험 답안 쓸 때 말고는 글을 써본 기억이 없었다. 그랬던 그와 글쓰기의 인연은 1990년 대우증권 홍보실 상사가 신입사원인 그에게 한 마디 물어보며 시작된다. "강원국 씨, 글 좀 쓰나요?"

 

급할땐 뭐든 임기응변이 된다하지 않았던가. 급한대로 글을 쓰라는 상사 지시에 그는 괴발개발 썼다. 겉은 그럴싸하고 읽는 사람은 없었다. 상사는 잘썼다고 칭찬했다. 저자는 그 순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됐다. 일은 하다 보면 늘게 되는 법, 이후 그는 글 쓰는 두려움을 점차 줄여나갔다.

 

글을 잘 쓰려는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두 대통령은 어땠을까? 글에 관한 욕심이 대단했다고 쓰여져있다. 두 분 모두 '이 정도면 됐다'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 자도 고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연설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은 연설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더한다. 끊임없이 더 나은 연설을 위해 고민했고, 대충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대통령은 어떻게 글쓰기를 할까에 대해 궁금하다면, 과거 두 대통령의 흔적을 알고 싶다면, 연설문은 어떻게 쓰여지는지 호기심이 생긴다면,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내용과 지난 두 대통령이 생각하는 글쓰기를 간접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욕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쓰면 되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애초부터 글쟁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싶은 내용에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맞춤법만 맞게 쓸 수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자.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대통령과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 한 내가 눈이 좀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한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을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이야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치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치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말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등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응집력 있게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29.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되네.

  30.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2.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되는 글이네.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를 음식에 비유해서 설명한 적도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부려서도 안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애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로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 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 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삼계탕이면 삼계탕. 한정식같이 이것저것 나오는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다네.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 글마다 다른 전개 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네. 글도 진심이 담긴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두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맞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대통령이 물었다. "내가 자네들보다 머리가 좋을까?", "아닐세. 나는 자네들보다 열 배는 더 생각을 많이 할걸세. 어느 때는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하네. 잠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까 봐 그러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회의 자리에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후 쏟아지는 대통령의 말은 원인 진단부터 대안 제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사안을 전후좌우로 헤집으며 의견을 내놓았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언급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각과 관련한 세 가지의 '세 번 원칙'도 있었다.

 

  1.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2. 상대가 있는 경우는 이렇다. 첫째,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둘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인가? 셋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것인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대통령의 글쓰기 힘은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2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빠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물론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단번에 일필휘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천재는 많지 않다.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단박에 써 내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생각이 안 나면 머리 어디쯤엔가 잠시 내버려둬도 좋다. 산책을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때로는 며칠씩 묵혀두고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있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독자와 교감하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미디어 전문가 마샬 맥루한의 유명한 말이다. 글은 독자와 대화다. 청중은 내 말을 듣는 참여자다. 독자를 의식하는 글쓰기란 무엇인가? 바버라 베이그 <하버드 글쓰기 강의>란 책에서 첫째,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 모을지. 둘째,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붙잡아둘지. 셋째,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어떻게 독자에게 분명히 밝힐지. 넷째, 독자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해서 그들을 웃고 울거나 생각하게 할지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자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첫째, 반걸음만 앞서가라.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 가지 마라.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 의견을 맞춰라.

 

둘째, 손을 놓지 마라.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마주 잡은 손이 떨어질 것이고, 따라올 수가 없다. 늘 그들 안으로 들어가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글을 쓸때에는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의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말했다. "말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과 말의 내용, 그리고 말을 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이 있다."

 


 

집중과 몰입의 힘

 

글을 잘 쓰려면 삼다, 즉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송나라 구양수의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다상량은 무엇인가? 헤아릴 상과 헤아릴 양이란 뜻이다. 헤아리고 또 헤아려 전심을 다해 몰입하란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독서, 사색, 토론이다. 대통령은 바쁜 청와대 생활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었다. 그는 청와대 참모와 학자, 관료, 시민단체 등 밤늦게까지 토론했으며,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창조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월터 W 레드 스미스는 글쓰기가 쉽다고 백지를 응시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마에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 미치면 미치는 법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지 않아도 죽을 힘을 다해 머리를 짜내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목숨 걸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글쓰기의 원천은 독서

 

독서는 세 가지를 준다. 지식과 영감과 정서다. 책을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중에 글 쓰는 데는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 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독서 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감옥에서의 독서는 유명하다. 옥중에서 보낸 편지 말미는 매번 '다음 책을 넣어주시오'로 끝내며, 10 - 20권의 도서목록이 적혀 있었다. 정치 / 경제는 물론 철학 신학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러 권을 펴 놓고 돌려가면서 하루 열 시간 정도 독서를 했다고 한다. 독서 중독인 셈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사색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스스로 지킬 것을 다짐한 '대통령 수칙' 12번이 '양서를 매일 읽고 명상으로 사상과 정책 심화해야 한다'이다.

 

노무현 대통령 주위에는 늘 책이 있었다. 책 읽는 게 일상 그 자체였다. 제임스 C 흄즈의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는 책도 추천했다.

 

대통령들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밑줄을 긋고 메모해가며 책을 읽었다.

 


 

결국엔 시간과 노력이다

 

글쓰기는 자질과 능력도 필요하지만, 준비와 연습이 더 중요하다. 두 대통령의 글쓰기 특징은 성실하게 미리 준비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나오는 게 글이란 얘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성실과 부지런함을 유독 강조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연설문 작성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두 대통령은 글을 빨리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꾹꾹 눌러쓰는 타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글을 많이 쓰고 글쓰기의 달인이면서도 글 쓰는 것을 힘들어했다. 언젠가는 '양극화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써 놓고, '씨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느낌을 살리는 다른 표현을 찾느라고 몇 시간 고민한 적도 있다고 얘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잘 찾아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햇볕정책'도 1994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탄생했다.

 


 

메모하라

 

정약용,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 이들의 공통점은 메모의 달인 이라는 것이다.

 

정약용: 사소한 메모가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둔필승총(둔한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이란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 만년필과 종이, 휴지통.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어디든지 연구실이라 할 정도로 아무리 작은 생각도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링컨: 큰 모자 속에 늘 노트와 연필을 넣고 다녔다.

에디슨: 3400권의 메모 노트가 그를 발명왕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억력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는 메모 습관이 있었다. '메모광'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매사에 꼼꼼히 기록했다. 장관 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할 때도 메모 노트를 옆에 놓고 얘기했다. 사례를 들 때는 메모에 있을 때와 장소 등을 참고했다. 해야 할 일도 깨알 같이 적어 놓고 늘 챙겼다. 완료된 일은 줄을 그었다.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메모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했다.

 

<김대중 리더십>에서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대통령은 대화 중에도 회의하는 가운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었다. 작은 손수철을 많이 활용했다. 여기에 신문이나 읽은 책의 주요 내용. 정세와 대책, 각종 수치와 통계, 해야 할 일 등을 1, 2, 3 숫자를 붙여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늘 가까운 곳에 메모지를 놓고 살았다. 손바닥 두 배 크기쯤 되는 메모지였따. 여기에 생각 날 때마다 수시로 메모를 했다. 회의 시간이나 연설할 때에는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서 이 메모지가 나왔다. 보고서를 보거나 TV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을 적은 메모였다.

 

대통령은 메모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

 


 

횡설수설하지 않으려면

 

글쓰기 최고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횡설수설한 글은 읽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두 대통령 모두 횡설수설하는 글을 가장 싫어했다.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나 싶더니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고, 오락가락한 글.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멋있게, 예쁘게, 감동적으로 쓰려고 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길어진다. 이 내용도 넣고 싶고 저 내용도 넣고 싶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글쓰기야말로 자제력이 필요하다.

 

둘째, 느끼해진다.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수식이 많아진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꾸밀수록 알쏭달쏭해진다는 것이다.

 

셋째, 공허해진다. 현학적인 말로 뜬구름을 잡고 선문답이 등장한다. 꽃이 번성하면 열매가 부실한 법, 결과적으로 자기는 만족하는데 실속 없는 글이 된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욕심이 드는 순간, 헤메게 된다. 준비한 대로 말하지 못할까 봐, 실수할까 봐 두렵고 떨리기까지 한다.

 

몇 가지만 명심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가급적 한 가지 주제만 다루자. 이것저것 다 얘기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자. 감동을 주려고 하지 말자. 거창한 것, 창의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자.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면 잘 안 써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쓰고 싶은 의욕만 있을 뿐, 쓸 내용은 아직 준비가 안된 것이다. 할 얘기가 분명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요점만으로 간략히 정리가 된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둘째는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는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자.

 


 

기조를 잡아라

 

기조는 간단히 말해, 글의 '분위기'다. 기조는 크게 보면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1. 논리적 접근

  2. 정서적 접근

 

기조를 잡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사람의 목표, 혹은 목적의식이다. 글 쓰는 목적이 주장인지, 설득인지, 설명인지, 호소인지, 당부인지, 반박인지, 질타인지, 제안인지, 사과인지에 따라 기조가 바뀐다. 목적이 '설명'에 있다면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야 한다. '주장'이 목적이라면, 주관적으로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글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기조를 달리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이유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인지, 감동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행동을 유발하기 위함인지, 단지 재미를 주거나 칭찬, 격려하기 위해서 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승철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에 따르면, 신문 사설도 설명형, 비판형, 설득형, 칭찬형으로 나뉘며, 해당 이슈의 성격에 따라 각각 맞는 흐름을 쓴다.

 

기조에 따라 전달 형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할 것인지,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할 것인지, 연설을 할 것인지, 아니면 편지 형식을 부드럽게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기조는 가급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좋다. 글의 흐름은 그것을 쓴 사람의 고유한 스타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기조를 잡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이 밖에도 많다. 대상이 전 국민인가. 지지 세력인가. 거대담론 형식으로 가져갈 것인가. 현안 중심으로 작게 가져갈 것인가. 차분하게 설명할 것인가. 각을 세워 도발적으로 반론할 것인가. 대외문제로 접근할 것인가 등 이 있다.

 


 

 

참고 도서

 

<드골 리더십과 지도자론> 이주흠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 제임스 C 흄즈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 노무현 등

<하버드 글쓰기 강의> 바버라 베이그

<수상록> 몽테뉴

<김대중 리더십> 최경환

<인문학 글쓰기를 위하여> 김동식

 

참고 작가

월터 W 레드 스미스

마샬 맥루한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존 나이스비트

폴 크루그먼

앤서니 기든스

제러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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