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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83 -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사이토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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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

 

평점 7 / 10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묵묵히 쌓아온 내공이 시간이 지나 어떤 결과를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로 나와 처음 소통했던 사이토 다카시님, 그의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생각을 읽고 싶어 다른 작품도 찾아봤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그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그는 대입에 실패한 열여덟 살부터 첫 직장을 얻은 서른두 살까지 철저히 혼자였다. 심지어 친구도 직업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공부에 몰입했다.

 

 

보통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곁에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불안 증후군'이라는 증상도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아마 외로움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외로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와 자꾸 함께 하려 한다. <혼자있는 시간의 힘>은 그의 인생을 완벽하게 바꾼 시간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꿈을 이루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헛된 시간이 아니며, 무의미 하지 않다.

 

 

공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찾아봐서 이해해야 한다. 모두 혼자 찾아봐야하고, 혼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집중에 방해되는 텔레비전이나 음악을 틀어놓는다. 비록 이렇게 하면 순간에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겠지만, 내면의 깊이가 생기는 데 지속적으로 방해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거나 "자신을 치유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시간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다.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의 생활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시기에 자기를 위한 시간을 더 가졌으면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직접 경험해보았으면 한다. 지난 10년 간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저자의 모습, 사이토 다카시는 없었을 꺼라고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거기서 인생의 갈림길이 나뉜다.

 

 

돈 공부 / 경제 / 금리 / 주식 관련 책을 읽다보면 머리가 멍해질때가 있다. 내 머리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럴때는 보통 일본인 작가의 책을 찾는다.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보면 일본인 작가 책이 대체로 어렵지 않고 가독성이 높았다. 게다가 많은 에너지 소모도 없다. 그냥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읽기 좋은 책이다. 사이토 다카시님의 책도 내 머리의 휴식을 안겨준 책들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이 여럿있는데, 전자도서관에서 그와 연관된 책은 모조리 다 읽어야겠다.

 


 

누구도 꿈을 대신 이뤄주지 않는다

 

나는 일본 교육을 바꾸고 싶다는 뜻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너무도 달랐다. 나는 항상 날카로웠다. 날카로운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물며 교수와도 잘 지내지 못했다. 석사 논문도 2년 동안 거의 쓰지 못해 논문을 전혀 쓰지 않은 대학원생이 되었다.

 

항상 초조했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틀어박혔다.

강의실의 다다미방이 좋아 자연스럽게 그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나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서도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에 있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한곳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일상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그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이것이 제2고독기의 추억이다.

 

제3고독기는 무직에 아이까지 있던 시절이었다. 그 몇 년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그러나 고독을 극복하면서 나는 스스로 단독자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로지 혼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등산하는 팀에서는 함께 있어도 모두가 단독자다. 누구도 산에 올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대신 올라가주지도 않는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신적 등산에는 자신있다. 만약 거기에 다른 사람이 있어준다면 나름대로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단독자끼리 가끔 함께 올라가는 방식으로 오르고 싶다.

 


 

함께 있다고 다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아니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뭔가를 배우거나 공부할 때는 먼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단독자의 자질이 필요하다. 일반인의 성향 중 하나는 자신의 자유와 주체성을 버리고 집단 속에 묻혀 자기를 잃어가는 것이다. 그 전체, 그 집단의 반대편에 서는 존재를 키에르케고르는 <단독자>라고 설명했다.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친구와 함께 온 학생들이다. 자발적으로 혼자 수업에 온 학생은 적을 것이다. 옆에 친구가 있으면 학습에 몰입하기 힘들다. 제대로 배우려면 친구와 함께 있지 말고 떨어져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저자와, 수업 중에는 담당 교수와 서로 진지하게 소통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는 생각이나 태도로 임하게 되면 딱 그만큼만 얻을 수 있다. 당연히 배움의 힘도 떨어지게 된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 마라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힘, 나는 이것을 <자기력>이라고 부른다. 젊을수록 '나는 이대로 끝날 사람이 아니야',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는 생각이 강하다. 나도 그때 그 시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남을 미워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만함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자기력 에너지가 높은 사람끼리는 서로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집단은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집단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집단은 일종의 담합 상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단독자는 담합으로 자신의 입찰 가격을 낮게 책정하지 않는다. 단독자는 높은 기대치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력은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기력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힘이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어제의 나, 1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 어느 구획마다 과거의 나와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똑같아 보여도 나는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싶었다.

 


 

남의 인정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넘치는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상처 내거나 세상에 대한 적대심만 갖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자기 객관화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세상에서 바라보는 나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자신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나는 "성과를 내라"는 주문을 스스로 걸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었다. 성과를 내려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젊은 시기에는 목표가 있어도 추상적인 신념에 사로 잡혀 고민만 하기 쉽다. 뭔가 큰일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혀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구체적인 행동까지 하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라', '성과를 내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말해왔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항상 승부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매 순간 진지하게 임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습관처럼 도전을 해온 사람들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나 에너지를 기술로 전환하는 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고독할 때 힘을 키울 수 있다. 사춘기 때만큼 집중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한밤에 고독한 영혼을 끌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절대적으로 평가하라

 

어떤 일이든 혼자 단련하고 실력을 늘려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야구 선수는 프리 배팅이라는 실제 볼을 치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뛰어난 선수일수록 혼자서 스윙 연습을 더 열심히 한다. 스윙은 주위에 사람이 있든 없든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연습법이다.

 

메이저리그의 마쓰이 히데키 선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감독과 함께 자주 스윙 연습을 했다고 한다. 캠프나 원정 훈련을 가서도 감독 방에서 스윙 동작을 취하면서 감독이 '좋다', '아니다'라고 눈으로 반응하며 대화를 나눴다는 일화도 있다.

 

흥미롭게도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혼자일 때 자신이 이루어야 할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즉, 혼자만의 시간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재능의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이미지를 가졌으면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속이 깊구나!', '빛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믿어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예술가 중에는 고독을 잘 극복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많다.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은 사실 고독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사튼의 <혼자 산다는 것>에서 "고독은 도전이며, 그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썼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드러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이다.

 

사튼은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고독 속에서 창조의 풍요로운 시공을 보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정신적으로 강한 것은 고독의 힘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럴때 직면한 상황의 의미를 찾고, 자신은 항상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고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떤 시련도 쉽게 꺽이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에는 관계도 끊어라

 

"선비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 다시 만날 때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사흘 동안 서로가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이상적으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친구 중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공부할 시간이 없다며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당시 한창 고독에 빠져 24시간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하루 종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변명이다."라고 거침없이 퍼부었다.

 

인생에서는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교제를 완벽하게 끊고 하고 있는 일도 철저히 정리하여 생활 전체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혼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세계를 즐길 수 있다면 40대, 50대, 60대가 되어도 충실한 날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젊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습관, 즉 고독의 기술을 익혀둬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

 

감각은 '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몸은 물이나 영양분의 공급이 부족하면 기력이 없어지고, 더위나 추위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몸은 생물로서 물질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좋은지 싫은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때도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의 직감력을 활용하면 의외의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평소에 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판단에 막힘이 없고, 실패도 적다.

 

한때 요가와 선에 빠졌던 적이 있다. 수행 중에는 다른 사람과 말도 섞지 않고 완전한 단독자 상태가 돼야 한다. 요가와 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수행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도록 돕는다. 머리로만 하려고 하면 힘만 빼기 십상이다. 철저하게 몸의 감각을 믿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포인트는 호흡이다. 호흡을 할 때는 입을 다물고 코부터 단숨에 숨을 들이쉰다. 숨을 멈춘 다음 되도록 천천히 입으로 내 쉰다. 이것을 '3, 2, 15'의 리듬으로 실시한다.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과 나가는 느낌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한 생명의 삶과 죽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숨을 내쉴 때는 가볍게 한 번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즉, 호흡을 할 때마다 '삶에서 죽음으로'를 반복하여 떠올리면서 지금 살아 있는 세상과의 거리감을 느껴본다. 그러다 보면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포함되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상태부터 파악하라

 

일이란 기본적으로 자리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일을 능력이나 재능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리가 주어지고 경험이 쌓이면 누구라도 웬만큼 일할 수 있다. 오히려 자리를 잡기까지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일단 자리를 잡으면 자리에 안주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60세든 70세든 날마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창조적이고 생기발랄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가', '매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바로 한 곳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다.

 

  1. 자신을 돌아본다

  2. 교양을 쌓는다

  3. 일기를 쓴다

 

이 세 가지 방법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다. 혼자인 시간에 이런 기회를 갖는다면 도전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

 

보통 거울은 외모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다른 사용법을 소개해본다. 사람은 의외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한다. '살이 쪘네', '안색이 어둡군' 등 단순한 반응에서 시작하여 조금 익숙해지면 정신적인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거울은 셀프 체크 도구로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코코 샤넬은 방 한가운데 거울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패션이나 외모를 체크하기 위한 용도였겠지만, 그녀에게 거울 보기는 자신과의 대화라는 또 다른 소통의 도구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철학적인 것을 좋아해서 독서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내면을 바라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다.

 

자신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들여다 보는 것을 '내관'이라 한다. 내관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공간에서 하루에 몇 시간 혹은 3일에서 일주일 동안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이때는 밥도 혼자 먹고 신문이나 TV도 보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 배우자, 회사 동료 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것을 받아왔고, 무엇을 해주었으며, 어떤 폐를 끼쳤는지 돌아본다. 인생을 정리해본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특히, 기쁘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사람은 일단 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쓰는 작업은 내면을 파고드는 드릴이 된다.

 


 

교양을 쌓는다

 

교양을 쌓는 것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지성이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맑은 샘과 같다.  특히 단독자로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타인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고고함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생긴 고고함은 타인을 배제하는 고립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 된다.

 

혼자서 뭔가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은 강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문학가나 예술가 중에는 사교계에서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며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의 달인도 있지만 감옥에서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은 채 격리되어 괴로움과 쓰라림을 맛본 사람도 있다. 기질이나 상황은 달라도 모두 일정한 시기에 혼자 시간을 보내며 고독의 기술을 닦은 것이다.

 

교양을 쌓고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독서다. 혼자일 때 책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볼거리, 즐길 거리가 극단적으로 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책 읽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독서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10년, 20년 후 인간적인 매력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

 

작가 폴 오스터도 엄청난 고독을 극복하고 교양을 쌓은 경험이 있다. 오스터는 파리 유학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미친 듯이 책을 탐독하며 보냈다고 고백한다.

 

"내가 몇 권의 책을 흡수했는지 생각하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어마어마한 수의 그것들을 마셔버리고 다양한 책으로 이루어진 여러 나라, 여러 대륙을 다 먹어치웠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중략.....) 마치 뇌에 불이 붙은 것 처럼, 생존이 걸려 있는 것처럼 나는 읽었다."

 


 

일기를 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그날 있었던 일을 쓰는 형식의 일기가 아니라, 뭔가 생각할 게 있을 때 편안하게 끄적이는 일기였다. 주로 혼자 지내며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일기는 대부분 생각 노트였다.

 

꽤 오랜 시간, 고민되거나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써왔기 때문에 이제는 습관이 되어 수첩에 이런저런 것들을 끄적거리곤 한다. 마음은 말과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의 힘이다. 말의 힘으로 자신의 신념을 키워나갈 수 있다. 말을 주문처럼 몇 번이고 반복하여 중얼거리면 효과가 있다. 말보다 더 효과가 있는 건 무엇일까? 바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싶다'는 글을 쓰다 보면 꿈에 대한 열정이 더욱 강해진다. 나 역시 내 안의 답답함을 일기에 주절거리듯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어 점점 명확한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일정한 시기에 그 밑바탕이 정해진다. 그때 반복적으로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명확해진 꿈과 생각이 자기 안에 깊이 뿌리 내린다. 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쓰기는 고독의 힘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며, 대표적으로 블로그를 매개체로 해서 글을 쓸 수 있다. 블로그는 남에게 보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장 연습이나 수정을 하며 쓰기에 좋다. 하지만 때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남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양한 감정들을 에너지 삼아 자신을 동기 부여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눈 앞의 일에 집중한다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집으로 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있던 돌계단에 앉아 자주 생각에 빠진곤 했었다. 나는 그때 돌을 닦았다. 가까운 하천에 가서 돌을 주워와 닦았다.

 

조탁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보석과 같이 단단한 것에 무언가를 새기거나 쪼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신을 조탁한다'고 하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든다는 의미가 된다. 닦거나 새기는 행위가 자기 안의 정서적인 행위와 겹치는 것이다.

 

목공이나 세공,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런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작업을 하는 시간, 먹을 가는 시간에 정신이 물건을 향해 있으면서도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동작을 하는 손의 감각을 통해 '오늘은 집중하고 있다' 하는 것을 직접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다.

 

 


 

독서에 몰입한다

 

독서만큼 고독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외로움을 달램과 동시에 마음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독서를 하면서 작품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성이나 경험치를 전부 가동하여 개인으로서 마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혼자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음악에 확 꽃혔을 때와 같이 '나만이 이 음악을 알고 있다'는 마니아적인 행복감과, 미묘한 가사나 창법에 집중하면서 '이런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겠지'라는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책이 마음에 들면 '내가 책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야기 상대로서 아주 흡족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독서하다 보니 그 시간 동안 내가 동경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버려야 할 감정은 빨리 흘려보내라

 

혼자 있으면 우울해져서 푹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는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지 말고, 시원시원한 물의 흐름을 상상해보거나 실제로 강에 달려가 본다. 그러면 우울한 생각이나 고민이 물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듯한 쾌감을 느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되뇌면 그것은 자신을 상처내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능숙하게 표출하면 마음에 쌓인 것이 해소되기도 한다. 말이 마음속의 더러움이나 응어리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내면서, 흘려보내야 할 감정들은 빨리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상처 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몸 상태가 기분의 상태를 결정한다

 

자아와 신체가 밀접하게 연합하여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혼자 있어도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고독에 짓밟히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신체와 일체감을 중요하게 여기고 몸과 정신의 상태가 일치되어야 한다.

 

몸의 상태가 안정되면 곁에 누가 없어도 정신적으로 안정된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당차진다. 몸은 기분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몸 상태에 민감하면 기분을 파악하여 조절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의식이 몸을 향하도록 한다. 대표적으로 요가나 선, 태극권 등이 그 충족감을 목표로 한다.

 

나는 몸을, 운반이 가능한 하나의 사원으로 간주했으면 한다. 밖이 아닌 절이나 돔 안에 조용히 있다 보면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몸이 자주 가는 카페처럼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면 혼자 있어도 안도감이 생긴다. 그럴 때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 고독 속에서도 어떤 큰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충실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날 수 있는 용기

 

다네다 산토카나 오자키 호우사이 같은 시인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고독을 즐겼다. 지방 강연회나 여행을 가서 가끔 혼자 가게에 들어갈 때, 낯선 도시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신기한 해방감을 느낄 때가 있다.

 

문학가 중에는 방랑자가 많다. 마쓰오 바쇼, 고바야시 잇사, 헤밍웨이, 헨리 밀러 등 그렇다. 사실 방랑은 그 자체가 고독을 즐기는 기술이다. 마음이 한곳에 머물면 상태는 악화된다. 하지만 걸으면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 간다. 그런 흐름에 융화되면 마음도 흘러간다. 이것이 외롭고 우울하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아야 할 이유다.

 

계속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훌쩍 떠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걷기'라는 방법을 활용해보는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책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문학을 통해 고독의 모습을 보게 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작품 속 주인공을 동경하여 그와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고독감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하고 위로 받는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어야 하는 우리는 쓸쓸함에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고독을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내 감정의 일부로 여길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고독이란 생명의 요구"라고 썼다.

 

고독을 명확하게 언어화한 작품을 접하면 적어도 우리는 누군가와 고독을 공유할 수 있다. 더구나 공감의 상대는 위대한 선인들과 문학의 대가들이다. 고독을 그린 작품을 읽는다는 자체가 고독에 대한 긍정이며, 외로움의 밑바닥에서 치고 오르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사춘기&청년기에 읽을 만한 권장 도서

 

<열아홉 살의 지도> 나카가미 겐지

 

<배터리> 아사노 아쓰코

 

<돌의 생각> 사카구치 안고

 

<데미안> 헤르만 헤세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성> 카프카

 

<방장기> 가모노 초메이

 

<한 줌의 모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과거에서 오늘의 답을 찾아라

 

책은 신기한 물건이다. 지금은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니 재미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보다 오래된 책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고다 로한, 히구치 이치요, 시키테이 산바를 주로 읽는다. 이들의 책을 읽을때는 '아 죽은자들이 와서 말을 걸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돈을 내서라도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까? 사자의 목소리는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메시지를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미야자와 겐지는 나에게 고독에 대해 많이 알려준 인물이다. 그가 쓴 시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는 '고별'이다.

 

"다들 도회지로 떠나거나

온종일 빈둥거리며 놀 때에

너는 홀로 저 돌밭의 풀을 베어라

그 외로움으로 너는 소리를 만들어라

수많은 모욕과 궁핍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서 노래하라

만일 악기가 없다면

알겠니, 너는 나의 제자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하늘 가득하게 빛이 만들어준 파이프오르간을 치면 되리니"

 

소리가 둔탁해지지 않게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외로움을 힘으로 바꾸라고 격려한다. 그 외로움으로 소리를 만들라고 응원한다.

 

소속감을 상실하게 되면 어디에도 머물 곳은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인간의 불안감이나 외로움을 성장하는 큰 에너지원은 독서이다. 요시다 겐코 <도연초>에서 "홀로 등불 아래 책을 펼치고 보이지 않는 세상 사람을 벗 삼으면 더 없이 위안이 된다"고 썼다. 오직 혼자서 책을 펼치고, 본 적도 없는 옛사람을 친구 삼으면 다른 무엇보다 위로가 된다.

 


 

고전에 의지하라

 

고독은 나와 위인들을 잇는 지하수맥이기도 하다. 괴테가 파고, 다자이 오사무가 판 장대한 문화와 예술의 수맥은 깊고 넓어 막히는 법이 없다. 그렇게 지수맥에 내려가다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 북적이는 어마어마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책은 지하수맥을 향해 도르래 역할을 해준다. 책의 주인공이 네비게이터가 되어 정신의 깊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준다. 만일 어느 정도 자신의 기질이나 처한 상황에 맞는 주인공을 만난다면 자신이 맞이할 고독의 예행연습을 할 수도 있다.

 

흔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자주 읽었는데 중학교 이후에는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아이의 독서에서 어른의 독서로 넘어가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른의 독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독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레슨인 셈이다.

 

지하수맥에 도달하려면 어쨌든 언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려려면 소울메이트를 찾는다는 기분으로 독서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고독에 짓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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