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전략가입니까 <중>
구찌의 창업가,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192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죽제품을 만드는 작업장 겸 가게를 처음 열었다. 과거에 벨보이로 일하며 부자와 명사들의 취향을 면밀하게 분석한 그는 훌륭한 장인의 솜씨와 높은 품질 기준에 초점을 맞춰 사업이였다. 그의 사업은 성공적이였고, 성장하는동안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갖춘 제품으로 명성을 얻어갔다. 구찌는 1953년 뉴욕으로까지 진출했다.
구찌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아들과 가족이 기업을 이끌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경이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구찌 상품은 개도국의 영리한 엘리트층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수제품'을 대표했으며, "가격이 잊힌지 오랜 뒤에도 품질은 기억된다"라는 상품 가치를 가죽 장식판에 새겼다. 1970년 내내 구찌는 영국여왕 등 유명인들 사이에서 사랑 받는 제품이였다. 구찌 상표는 이런 여성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지위를 부여했고,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다. 이후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구찌 매장을 가득 메웠다.
1970년대 구찌는 에르메스, 샤넬과 함께 원가도 높고 지불 의사도 높은 지위에 위치해 있었다. 구찌는 우아함, 재산, 성공을 상징했다. 당시 구찌사는 구찌의 3명의 아들(알도, 로돌포 그리고 바스코)가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찌는 1975년 바스코 구찌 사망 이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1979년 알도의 세 아들 중 한명인 로베르토는 구찌의 새로운 악세서리 컬렉션 설립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것에 자극받은 알도의 또 다른 아들 파올로는 더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저렴한 상품 라인을 개발하려 했으나, 아버지 알도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 이 사업을 막았다. 이에 파올로는 미국 국세청에 접촉해 자기 아버지가 세금을 탈세해온 사실을 폭로하며 81세의 알도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 일조했다.
구찌 가문이 혼란에 휩싸인 채 자주 법정에 드나드는 모습은 구찌 브랜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가격이 비싸지 않은 구찌 상품들은 솜씨가 뛰어난 가죽 제품보다 위조하기가 훨씬 쉬웠다. 구찌 짝퉁은 중국 태국 등에서 어디에서든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알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대중식당, 트라토리아와 비슷하다. 온 가족이 주방에 있으니까요" 대중적인 트라토리아처럼 구찌는 더이상 고가의 희귀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마진, 저원가 사업으로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이던 라이센스 계약은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구찌의 오랜 목적을 약화시켰다. 결국 구찌는 시장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허덕이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침체에 빠진 구찌를 다시 살리기 위해 당시 대표인 마우리치오(로돌포 아들)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이를테면, 구찌 브랜드 상품 2만 2000개에서 7000개로 줄였고, 1000개의 매장 중 800개가 넘는 매장을 폐쇄했다. 1990년 1월에는 구찌 악세사리 컬렉션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도매 사업과 면세점 사업도 중단했으나 대체 사업이나 교체 사업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구찌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약 1억 2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으며, 마우리치오마저 재정적 곤경에 빠졌다. 결국 인베스트코프에서 구찌 지분을 사들이며 역사상 처음으로 구찌를 경영하는 구찌 가문의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구찌를 새로 이끌게 된 인물은 도메니코 드 솔레였다. 그와 그의 팀은 구찌의 목적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했다. "구찌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가?", "구찌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 많은 브랜드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 기업이 특별하고 타당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구찌는 최고위층을 겨냥한 명품 브랜드로 계속 남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브랜드로 진화해야 하는가?"
드 솔레는 구찌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가졌다. 그는 구찌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 대신, 그들의 사업을 면밀히 살펴본 다음 무엇이 잘 팔리고 무엇이 팔리지 않는지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데이터로 실제 경험으로 문제 해결을 하길 원했다. 관리자들이 제시한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구찌가 최근에 거둔 성공작 중 일부는 소수의 계절상품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뜻밖에도 구찌는 고정된 스타일이 아닌 최신 유행에 맞는 패션 부문에서 견인력을 얻고 있었다.
드 솔레는 구찌의 초기 시절과는 다른 목적을 선택했다. 그들은 과거 구찌가 자리했던 위치를 탈환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대신 시장의 중상류층, 프라다나 루이뷔통과 비슷한 분류군에서 대중을 겨냥한 명품 시장을 자리 잡기로 결정한 것이다. 드 솔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발상은 상당히 단순했습니다. 구찌는 높은 품질에 바람직한 가격이 매겨진 패션 지향적인 기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즉 우리가 패션 리더가 되어야 하고 고품질의 상품을 전달해야 하며 고객이 우리에게서 산 물건으로 커다란 가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구찌는 더 이상 엄마의 구찌가 아니였다. 성공을 위해 더 젊고 현대적인 고객집단에 집중했고, 부유하고 보수적인 노년의 여성 고객층은 포기해야했다. 구찌는 1995년에 유행선도, 높은 품질, 바람직한 가격을 기초로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타임지는 스타일 전쟁이라는 표지 기사에 구찌의 부활을 알렸다. 재무성과 또한 눈부셨다. 2000년까지 5년의 회계연도 동안 평균 수익 증가율은 36%, 연평균 영업이익증가율이 54%임을 가리키며 대단한 성과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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