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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59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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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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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16대 17대 국회의원 출신이자, 노무현 정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유시민님이다. 그는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주제의 핵심을 찌르는 논리정연한 언변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있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대중이라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겠지만, 그를 지지하는 대중들은 그의 사이다 발언에 속이 시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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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님은 언변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글도 잘쓴다. 그는 30년 전부터 <글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여러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작 당사자는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을 뿐더러 누구한테 글 쓰는 방법도 배우지 않았다. 그냥 '살다 보니' 아니면 '어쩌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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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의 책을 낸 후,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야 자신의 글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후 더 잘 쓰고 싶어서 나름 고민도 했다. 그는 30년 세월동안 글쓰며 보냈지만, 아직도 자신의 글이 좋다는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잘쓰는 비결에 대해> 작가는 말했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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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쓰기 방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몸으로 익히고 습관을 들여야 잘 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자동차 운전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몸이 알아서 반응하여 운전하듯이, 글쓰기도 습관을 익혀야 잘 쓸 수 있다. 글을 자꾸 쓰다보면 컴퓨터 키보드나 볼펜이 손가락처럼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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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증의 미학

 

유시민 작가는 26살부터 글쓰기 시작하여, 30대 중반 독일 유학생 시절에는 <한겨레>에서 국제면 기사를 썼고, 40대에는 여러 신문 칼럼에 글을 담았다. 정치를 했던 10년 동안에도 틈틈이 글을 썼으며, 정치계를 떠난 뒤에는 작가로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정신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이든 글이든 원리는 같다. 언어로 감정을 건드리거나 이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사유 능력에 기대어 소통하려면 논리적으로 말하고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려면 논증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효과적으로 논증하면 생각이 달라도 소통할 수 있고 남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며 내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아야 한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면 꼭 지켜야 하는 규칙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해야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

 

독일 학생 A와 B가 피어싱 여러 개 한 여성 당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A: "미친 것!"

B: "뭐가?"

A: "저 피어싱 말이야, 금고리를 열 개나 달고 다닐 돈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 학교 보내는 데 후원이나 하면 좋잖아!"

B: "그럼 그냥 귀걸이 한 쌍은 어때?"

A: "그거야 괜찮지"

B: "그건 왜 괜찮은데? 그 귀걸이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서 기부하면 안되나?"

A: "안 될 건 없지만, 귀걸이 하나 하는거야 이상할 게 없잖아"

B: "귀걸이 한 개는 정상인데 피어싱 열 개는 비정상이고? 정상적 장신구와 비정상적 장신구를 나누는 기준이 뭐야?"

대화의 끝은 결국 B가 이겼다. 두 사람은 '정상적인 귀걸이'와 '미친 피어싱'을 나누는 기준이 없다는 데 합의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A가 주장한 가치판단의 정당성을 논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목걸이나 귀걸이는 미적 감각과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각자,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미적 취향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주장은 반드시 논증하라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옳은 주장이라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논증하지 않고 주장만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게 된다. 글을 쓸 때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 주장은 반드시 그 타당성을 논증해야 한다. 사실과 주장은 엄격하게 구별하고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시를 보자.

 

"대한민국 최고 미남은 장동건이다"

 

형식만 보면 마치 사실을 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게다가 엄밀하게 말하면 주장도 아니다. 단지 주관적 취향을 고백한 것일 뿐이다. 주장을 하려면 아래와 같이 써야한다.

 

"나는 장동건을 대한민국 최고 미남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주장이다. 따라서 논증을 해야 한다. 장동건이 최고 미남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나 이유를 밝혀야 한다. 1) 미남의 기준을 제시한다. 2) 미남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기준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별에서 온 그대> 김수현이 장동건보다 더 정확하게 그 기준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스포츠를 주제로 논증 없는 주장에 대한 예시를 소개한다.

<오늘 벌어지는 한미전이 재삼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모두 불굴의 투혼으로 반드시 승리해 16강 진출은 물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드높여 줄 것으로 확신한다>

 

유시민 작가는 '민족은 축구를 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위의 논평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 명제라는 전제로 글을 썼다. 그는 민족의 저력 / 민족의 우수성이라는 전제가 타당한지 알아봤고, 위의 전제가 옳다면 카메룬, 나이지리아, 세네갈은 저력이 있고, 우수한 민족인 반면에 미국, 일본, 중국, 한국은 저력이 없고 우수하지 못한 민족으로 전락한다. 즉 축구 성적과 '민족의 우수성' 사이에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없다.

 

논증의 미학이 살아 있는 글을 쓰려면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고 논증 없는 주장을 배척해야 하며 논리의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아쉽게도 모든 사람이 논증의 미학을 애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엄격한 논증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논증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주제에 집중하라

 

글을 쓸 때는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유, 애초에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잊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으로 논리를 밀고 가야 한다. 이 규칙을 지키려면 주관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글을 쓸 때 감정에 빠지면 길을 잃기 쉽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그날 경기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아닌 여러 해 사귄 모델과 헤어지자마자 새로운 애인을 만나는 걸 가지고 축구 선수를 비난한다든가, 재료와 양념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생선 매운탕에 방아잎을 넣었다는 이유로 음식 전체를 혹평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선수나 특정한 맛에 대해 매우 강력한 호불호를 가진 사람이 그 감정에 빠져 쉽게 <논점 일탈의 오류>를 저지른 예시다.


글쓰기의 철칙

 

누구든 노력하고 훈련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논리 글쓰기는 문학 글쓰기보다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조금 과장하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노력하면 유시민만큼 에세이를 쓸 수는 있다.

 

저자는 글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문학적인/예술적인 글과 논리적인/공학적인 글이다. 시, 소설, 희곡은 문학 글인 반면에, 에세이, 평론, 보고서, 칼럼, 판결문, 안내문 등은 논리 글이다. 문학 글쓰기는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언가를 지어내는 상상력,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훨씬 덜하다. 논리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발췌 요약에서 출발하자

 

글쓰기를 하려면 텍스트 발췌 요약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글쓰기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기능이다. 아무리 뛰어난 헬스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아도 실제 몸을 쓰지 않으면 복근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가르침을 받아도 계속 쓰지 않으면 훌륭한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잘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텍스트 요약은 논리 글쓰기의 첫 걸음이며, 이것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남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남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이 쓴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말로든 글로든, 타인과 소통하고 싶으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바람직하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제법 괜찮은 훈련법이 있다. 바로 학회의 도서 목록과 토론식 학습 방법이다. 학습 방법은 평범하고 단순하다. 매주 한권씩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읽고, 핵심 내용을 추려 발표하고 선배들과 함께 토론한다. 저자는 당시 이런 활동으로 텍스트를 요약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누구나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요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강남 학원가에 있는 대입 논술 전문 강사도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도서 목록이 다를 뿐이다. 요약은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추려 논리적으로 압축하는 작업이다. 텍스트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독해력과 문장 구사력 그리고 요약 능력은 서로 북돋아주기 때문에 지속적인 독서가 중요하다.


글쓰기의 철칙 1

 

글을 쓰려면 다음 네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 그 주제를 다루는 데 꼭 필요한 사실과 중요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셋째, 그 사실과 정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넷째, 주제와 정보와 논리를 적절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논리적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로는 책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 아는 게 많아질 수록 텍스트를 빠르게 독해할 수 있고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의 철칙 2

 

독서는 글쓰기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글쓰기의 두번째 철칙은 다음과 같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글쓰기 근육이 부실한 사람은 무엇보다 첫 문장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첫 문장을 자신 있게 쓰려면 먼저 글 전체를 대략이라도 구상해야 한다. 그런 구상 없이 첫 문장을 쓰려면 설계도와 조감도 없이 무작정 집 짓기 공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막막할 수밖에 없다. 


책 읽기와 글쓰기

 

시간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 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선후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글이 말을 얽어매고 언어가 생각을 구속한다. 하지만 언어에 한정에서 보면 글이 아니라 말이 먼저다. 글을 쓸 때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글은 뚜렷한 주제 의식, 의미 있는 정보, 명료한 논리, 적절한 어휘와 문장이라는 미덕을 갖춰야 한다. 만약 이 네 가지 미덕을 갖추는 데 각각 서로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면 글쓰기는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이다. 독해력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의 수준을 좌우한다. 눈으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강연을 들을 때도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독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글쓰기만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어떤 과제도 잘해내기 어렵다.


모국어가 중요하다

 

사람은 언어를 쓴다. 소리를 듣거나 문자를 읽는 신체 기관에 장애가 있어도 언어를 쓸 수 있다. 청각 장애인은 수화로 대화하고 시각 장애인은 점자 책을 읽는다. 헬렌 켈레 여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대학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글을 썼다. 사람은 언어를 모르는 채 태어난다. 처음에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몇 달만 지나면 말귀를 알아듣고 1년 정도 더 지나면 말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일단 말을 시작하면 몇 년 걸리지 않아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며 그리 오래지 않아 문자를 익히고 글을 읽는다. 

 

뇌는 태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태어난 후 3년 정도 폭발적으로 자라며 그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성장기의 뇌는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부위 사이에 더 많은 신경세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진다. 이 시기에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어떤 자극과 과제를 받느냐에 따라 뇌의 구조와 기능이 적지 않게 달라진다. 환경은 뇌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의 뇌는 생물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뇌는 평생 두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 발전, 퇴화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말과 글의 집합이 아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데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어렵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잘하기 어렵다. 외국 유학을 하는 경우에도 외국어를 물 흐르듯 하면서 모국어가 신통치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그 반대가 낫다.


말이 글보다 먼저다

 

자녀가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언어적 자극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언어 능력이란 아는 어휘의 수, 문장 구사력, 독해력, 문제의식, 논리적 사고 능력 등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시간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 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말보다 먼저 글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언어에 한정해서 보면 글이 아니라 말이 먼저다. 글을 쓸 때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 못 하는 아기한테 자주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때 아기의 뇌에서는 행복한 비상사태가 일어난다. 청각신경이 포착한 음성 정보를 해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아기의 뇌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에 더 많은 뉴런을 배치하고 교신을 더욱 강화한다. 반쪽짜리 말을 하는 아이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해야 한다.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부모가 우리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친숙한 목소리로 읽어줄 때, 아이의 뇌는 그 음성 정보를 해독하기 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모든 아이가 동화책 듣기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확실하다.


전략적 독서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또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면서 어휘를 익히고,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문장을 익힌다. 똑같이 많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책은 아니다. 독해하기 쉬운 책이 있고, 어려운 책이 있다. 쉬운 책만 읽어서는 독해력을 기르기 어렵다. 속독하는 사람은 모든 책을 빠르게 읽는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읽어도 내용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별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준으로 텍스트를 이해한다면 빠르게 읽는 편이 낫다. 같은 시간,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은 빠르게 읽으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글쓰기에 유익한 독서법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며,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2)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3)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유시민 작가는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 세 권을 글쓰기 독서로 추천했으며, 두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정도 읽어보라고 권장한다. 논리적 글쓰기를 하려면 추상적 개념을 담은 어휘를 많이 알고 명료한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추상적 개념을 익히려면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양서도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문장으로 쓴 흥미로운 교양서를 반복해서 읽으면 <토지>를 반복해서 읽을 때와 같은 효과가 난다. 손으로 필사하는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다. 작가가 추천한 책 중에는 어려운 책도 있다. 하지만, 그 단계를 견디고 넘어서야 한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번 더 읽으면 된다. 그래도 어려우면 세 번 네 번 읽어야 한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격언이 한문책을 읽을 때만 타당한 건 아니다. 힘이 든다고 해서 이런 책을 다 건너뛰면 개념과 논리를 배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휘와 문장도 익히지 못한다. 그래서는 아무리 열심히 써도 글이 늘 수 없다.


못난 글을 피하는 법

 

글쓰기도 노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역설로 들리겠지만,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면 훌륭하게 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특정할 수 없지만, 맛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가려내는 기준은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도 비슷하다. 쓴 사람도 다르고, 글도 다르고, 읽는 사람 취향도 달라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글'을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훌륭한 글과 못난 글이 있으며 그 둘을 가려내는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재미있는 건 훌륭한 글은 서로 다르게 훌륭하지만, 못난 글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못났다. 훌륭한 글을 쓰고 싶으면 잘 쓴 글을 따라 쓰는 데 그치지 말고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제 나름의 멋진 스타일을 입힐 수 있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이 없으면 훌륭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된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우리글 바로쓰기

 

못난 글을 쓰지 않으려면 흉한 문장을 알아보는 감각과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쓰기도 면역력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 책, 신문, 방송을 보면 병든 말과 글이 널려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을수록 문장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반면 면역력이 센 사람은 글이 엉망인 책을 읽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좋은 문장을 쓴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못난 글과 나쁜 문장에 대한 면역력이 저절로 생긴다.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는다고 해서 곧바로 훌륭한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못난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익히는데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우리글 바로쓰기>는 못난 글을 쓰지 않도록 면역력을 길러주는 백신 역할을 한다.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권까지 다 읽으면 1권을 다섯 번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책과 신문의 글 뿐만 아니라 방송 말에 이르기까지 못난 말과 글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잘 쓰려면 한자말을 오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자를 병용하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중국 글자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거나 오늘날 쓰지 않는 토박이말을 쓰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말과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도록 쓴 글이 훌륭한 글이다. 지식을 뽐내려고 한자말을 남용하는 것, 민족주의적 언어미학에 빠져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토박이말을 마구 쓰는 것, 둘 모두 피해야 할 행동이다.


단문 쓰기

 

글은 단문이 좋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논리 글도 마찬가지다. 단문은 그냥 짧은 문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문장 하나에 뜻을 하나만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주어와 술어가 둘이 넘는 문장을 복문이라고 한다. 복문은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을 때, 단문은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쓰는 게 좋다. 단문이 복문보다 훌륭하거나 아름다워서 단문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문은 복문보다 쓰기가 쉽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멋지게 어울리는 단어를 결합해야 한다. 사전을 뒤져 용례를 찾아가며 글을 쓰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 가끔 그럴 수는 있어도 글을 쓰는 내내 사전을 찾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잘 쓴 글을 많이 읽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편이 더 쉽다. 단어의 궁합, 표현의 자연스러움은 '안다'기보다는 '느끼는'것이다. 무엇보다 뜻이 두루뭉수리 불분명해서 아무 곳에나 넣어도 되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단어를 자꾸 쓰면 어휘 구사 능력이 퇴화한다. 생각을 감추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는 어휘가 너무 적어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탓이라면 단기 해결책이 없다. 근본 대책은 독서량을 늘리는 것 뿐이어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


아날로그 방식 글쓰기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이 맞다. 하루 3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주 엿새를 그렇게 하면 180분, 세 시간이 된다. 한 달이면 열두 시간이다. 1년을 하면 15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3년을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서 대학생 수준으로 글솜씨가 좋아진다. 유시민 작가는 그렇게 해서 글쓰기 근육을 길렀다.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많이 써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답이다. 진부한 처방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해서 다 낡은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글쓰기 근육을 기르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우리 몸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귀로 듣는 것을 거쳐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뭐든 많이 쓰는 것이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논리가 아니다.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참고 서적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김형수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장강화> 이태준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임재춘

<토지> 박경리

<자유론> 존 스튜어트 / 서병훈 옮김 / 책세상

<코스모스> 칼 세이건 / 홍승수 옮김

<태백산맥> 조정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마음의 과학> 스티븐 핑커 외 지음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강의> 신영복

<역사의 연구> 아널드 토인비

<권력이동> 앨빈 토플러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른스트 슈마허

<소유냐 삶이냐> 에리히 프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정재승

<가이아> 제임스 러브록

<불확실성의 시대> 존케네스 갤브레이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공산당선언>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성 정치학> 케이트 밀렛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시민의 불복종>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우리글 바로쓰기>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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