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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강병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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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투혼 <중>

 

부국강병에 집중하다

 

일본의 근현대사를 보면 대략 40년마다 커다란 고비를 맞아 활황과 불활을 경험했다. 즉, 80년이라는 주기로 역사적인 변동을 반복했다. 에도막부가 지배했던 봉건 사회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유신 때문이었다. 1867년 대정봉환 (에도막부의 쇼군이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환함) 이 실시되어 메이지 신정부가 수립되었다. 



새로 시작한 메이지 정부의 기본 정책은 부국강병이었다. 생산을 늘리고 산업을 일으키며 군비를 확대함으로써 근대 국가를 건설함에 목표로 했다. 부국강병의 길을 걷기 시작한 1865년부터 45년 후 러일 전쟁에 승리하고, 1905년 포츠머스 조약에 조인한다. 



단숨에 국제 무대에 진출한 일본이 선택한 정책은 군비 확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등 메이지유신 이래 국가적 방침이 된 부국강병 중에도 특히 '강병'에 집중하게 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패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이는 러일 전쟁 종결을 의미했던 포츠머스 조약으로부터 정확히 40년 후인 1945년의 일이었다.



패전으로 초토화된 일본은 중대한 반성을 했다. 이번에는 부국의 방향으로 경제부흥에 힘썼다. 세계인들인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이라는 야유도 받았지만, 미국 다음으로 GDP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그 정점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40년이 경과한 1985년이었다.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유일한 나라이자, 많은 나라에서 일본의 독주에 불만을 품고 비판이 거세졌던 때다. 그해(1985년)에 바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일본은 적극적인 재정금융 정책을 펼쳤고, 시장에 자금이 넘치는 버블경제가 가속화되었다. 토지와 주식 가격이 유례없이 올랐고, 투기열풍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버블은 붕괴되었고, 그 후유증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잃어버린 20년'으로 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파멸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우리를 멍들게 하고 사회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플라자 합의와 버블경제 붕괴로 이런 문제를 알아차리고 근본적인 문제를 재검토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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