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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1990년대 닷컴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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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en.wikipedia.org/

 

제로투원 <중>

 

1990년대 닷컴버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1990년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미국 경제는 침체기에 빠졌다. 하락 국면은 1991년 3월에 끝났지만, 실업률은 1992년 7월까지 계속 상승했다. 1992년부터 1994년 말까지 불안정한 세계 정세는 계속되었다. 실리콘밸리 역시 부진했고, 반도체 전쟁은 일본이 승리하는 듯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게 인터넷이다. 1992년 말이 되기 전까지 인터넷의 상업적 용도에 제한이 있어 대중화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1993년 11월 모자이크(Mosaic) 브라우저가 공식 발표되면서 일반인들도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모자이크는 이후 넷스케이프(Netscape)가 되었고, 넷스케이프는 1994년 말에 네비게이터(Navigator) 브라우저를 출시해 이용자 점유율을 급속히 늘렸다.  넷스케이프는 아직 이익도 나고 있지 않았으나, 1995년 8월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후 5개월 만에 넷스케이프 주식은 주당 28 달러에서 174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야후(Yahoo)는 1996년 4월, 8억 4,800만 달러의 가치로 상장되었고, 아마존은 1997년 5월에 4억 3,800만 달러에 상장되었다. 1998년 봄이 되자, 각 회사의 주가는 4배 이상 뛰었다. 전문가들은 어렵지 않게 시장이 미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96년 12월 (실제 버블이 붕괴된 것보다 3년 이상 앞선 시점), 연준 의장 앨런 그리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 '자산 가치를 과도하게 높여놓았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으로 미국 주가는 폭락했다.

 

1997년 7월, 금융위기가 동아시아를 강타했다.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기업 은행 정부 간의 유착 관계, 족벌 경영 등 부정부패와 직결된 경제계 문화)와 외화 부채는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경제를 흔들었다. 다우지수는 며칠 만에 10% 이상 떨어졌다. 과도한 레버리지 (차입 투자) 전략을 펼치고 있던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매니지먼트 (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를 무너뜨렸다.  연방준비은행은 대규모 구제금융을 실시하고, 대대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닷컴 열풍은 1998년 9월부터 200년 3월까지 18개월동안 지속했다. 나스닥지수는 2000년 3월 10일 5,048을 찍고 버블은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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