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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49 - 판결의 재구성 / 도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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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판결 소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준 도진기 작가님에게 감사하다.

 

평점 10 / 10

 

우리는 타당한 인과 관계를 따졌을때 그것이 적절히 들어 맞으면 보통 "논리적이다" 라고 표현한다. 논리의 뜻을 찾아봤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라고 풀어놨다. <판결의 재구성>은 판결문 논리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명가수그룹 듀스, 김성재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김모씨에 대해 "졸레틸 1병은 치사량에 못 미치는데, 김성재는 죽었다. 김모씨는 졸레팅 1병만 구입했다. 따라서 김모씨는 김성재를 죽이지 않았다". 라고 판결을 내렸다. 과연 이 논리가 적절할까?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한 논리와 상식은 판결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 법원에 대기 중인 수 많은 사건들을 심판하기 위해 적용된다. 저자는 법원에서 논리와 상식이 판결에서 절대적인 승복을 값할 만큼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늘 그렇지 못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느 날 그는 거친 논리로 무장된 불완전한 판결문을 보았다.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이어지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해 저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그 결정이 우리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법원에서 판결하는 판사도 사람이다. 즉, 사람이 결정하는 판결이 늘 옳다는 보장이 없으며, 언제든 그것을 헤집어 봐야 한다. 자기계발에 무관심한 법률가들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은 후, 게을러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안도감은 발전을 막고, 도태된다. 사실 그건 '판사'였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판결의 내부를 비판적으로 짚어나가며, 대중이 오해하고 있는 법 부분을 쉽게 풀어준다.

 

제목만 봐선 지루해 보일 수 있다. 완전 생소한 내용을 접하기 때문에 나 역시 첫장을 넘기기 전부터 머뭇거렸다. 책에서 소개시켜주는 사건 대부분은 살인사건, 실종사건에 대한 형사처벌 관련 이야기다. 변호사 실종 사건부터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까지 한번쯤 들어본 사건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건도 있다. 알다시피 매 사건은 1심 2심 그리고 마지막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사실 재밌는 건 사건의 끝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때까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심 2심에서 유죄더라도 최종 판결에서 결과가 뒤집어질수도 있다. 나는 덕분에 법률에 관한 유익한 정보와 각 사건마다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사각지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법부의 논리와 상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김성재 사건이다.

 

2004년 사라진 변호사 사건

 

2004년 변호사 실종 사건의 인상적인 점은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증거불충분으로 살인죄 기소를 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시체가 없다면, 다량의 피라도 발견되어야만 죽음으로 판단하고 증거로 채택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살인죄 대신 사기죄와 문서위조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법원에서 재판한다면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사라진 변호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매 사건 에피소드와 판결 과정 결과를 쉽게 해석해주고 비판적인 사고로 접근해준다.

 

1997년 이태원 살인 사건

 

에드워드 리와 아서 패터슨 중 누가 진범인지 가려내는 부분 이 사건의 화두다. 개인적으로 둘다 사형감이라 생각되지만, 사법부나 검찰의 진지한 노력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검찰이 출국정지를 하지 않아 패터슨은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를 다시 인도하는데만 걸린시간은 무려 4년, 2015년이 되서야 마침내 패터슨은 다시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세번의 재판을 거쳐 살인죄로 20년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유족은 "검찰이 출국정지 연장 기한을 놓친 틈을 타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해 진실 발견이 늦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법원은 국가가 3억 6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가장 안타까운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와 성처만 남은 유족들이다. 화장실에서 이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에게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0년 낙지 살인 사건

 

저자는 이 사건을 토대로 합리적 의심에 대해 소개한다. 예를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급 상승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베팅을 하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걸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정말 털끝만큼의 의혹이나 불안이 없어야 한다. 법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등장한다. 상식 선에서 A가 유죄라고 생각하지만, 이 재판은 A의 인생이 달려있다. 판사는 A의 유죄를 전부 걸 수 있을까? 그럴려면 이 판결에는 털끝만큼의 의문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원칙이다.

 

낙지 살인 사건은 피해자 목에 낙지가 걸려 사망한 사건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건 사실 용의자가 주장한 내용에 불과하다. 정작 기소 내용은 용의자가 피해자 코와 입을 막아 질식사를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질식으로 인한 사항은 크게 기도폐색과 비구폐색으로 나뉜다. 기도폐색은 식사 도중 음식물을 잘못 흡입해서 일어나는 사고다. 비구폐색은 물건으로 사람의 입을 틀어막아 살해하는 경우다. 법의학자들은 비구폐색 타살의 경우,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기 때문에 구강 안쪽 점막이나 입술 또는 코 등에 상처가 남게 된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피해자 입 주위에는 상처가 있었다는 입증이 없었다.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은 비구폐색 여부를 밝히지 못해 근본적인 한계가 있던 사건이었다. 1심은 용의자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2심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결국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사건들과 판결들

 

대한민국만 봐도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각인시켜준다. 수 많은 민사 사건에서 저자가 판사의 입장으로 바라본 대부분은 마음이 상한 것이 진짜 이유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접촉사고가 났을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건네봐라. 분기탱천했던 사람들이 보험처리도 필요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한국인은 특히 더 그렇다는 걸 법정에서 여실히 느낀다고.

 

참고 용어

일사부재리 - 판결이 내려진 어떤 사건(확정판결)에 대해 두 번 이상 심리·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상의 원칙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로마시민법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민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파기환송심 - 원심(1심 또는 2심)의 판결이 법리적 오해, 심리미진 등 법률적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잘못 판결되었고 대법원은 이를 인정할 수 없어서(파기) 원심으로 돌려보낼테니(환송)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한다는 의미다.

 

참고 도서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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